Rising 5 Designer's Diary

김건희 Gary Kim

    나는 보드게임을 개발할 때 두 가지 길 중에 한가지 길을 선택한다. 첫 번째 길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메커니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는 길이다.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코어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적절한 테마를 생각해 맞춰 넣게 된다. 이 길은 비교적 쉬운 길이다. 하지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 다는 것은 행운이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전업 개발자가 된 이후로는 다른 길을 통해 게임을 개발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길의 입구에는 가장 먼저 게임의 컨셉이 자리잡고 있다. 그 다음에는 테마가 정해지고, 메커니즘은 그 이후에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개발을 하게 된다.

라이징 5는 이 두 번째 길을 통해 만들어진 게임이다. 여기 그 여정을 소개해 보겠다.

게리킴게임즈에서 개발한 첫게임은 'the DOME'이라는 2~4인 카드게임이었고, 두번째 게임은 'the GATE'라는 1:1 대전형 덱빌딩 게임이었다. 두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크래커라고 해서 해킹을 하는 친구들이다. (넷러너가 떠오른다고?... 작전성공!) 이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the CODE'라는 게임을 세 번째 게임으로 구상 중에 있었다. 해킹이라는 테마를 추리 메커니즘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정해진 제목이었다.

    'the CODE'는 '모바일앱과 연동되는 추리게임'이라는 컨셉이 주요 아이디어였다. 이 컨셉을 처음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에센박람회에 가서 처음 본 '알케미스트'라는 체코 CGE사의 게임을 보고 나서였다. 에센에서 본 알케미스트의 플레이 광경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모두 자신의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게임을 하는 모습이라니! 보드게임 씬의 미래를 보는 기분이었다. 에센 현장에서는 구매만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야 게임을 해볼 수 있었다.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플레이 해보니 겉보기와는 다른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선 플레이어 모두가 자기 핸드폰에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깔아야 했으며 심지어 버전까지 맞춰야만 했다. 이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매우 번거로웠다. 준비시간도 그렇지만 게임 자체의 플레이 타임도 굉장히 길었다. 보드게임 너드인 나한테는 맞는 게임이었지만, 함께 플레이 한 친구들 중에 일부는 좀 힘겨워 했다. 그 친구들에게 한 번 더 해보자고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결정한 게 'the CODE'를 만들 때 다음 두 가지 사항을 반드시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각자의 핸드폰을 쓸게 아니라 누구거든 딱 한 대만 쓰면 게임이 되게 하자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플레이 타임을 줄여 쉽게 한번 더 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알케미스트가 각자의 핸드폰을 모두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경쟁-추리 게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의 단서를 핸드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데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협력-추리게임이라면? 누군가의 핸드폰 하나만 사용해서 모두 함께 보면서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결국 게임 주인만 앱을 깔면 될 것이고 그러면 준비할 시간도 짧아지고 전체 플레이 타임도 줄게 될 것이었다.

세부적인 컨셉이 결정되었으면 이제 게임의 '코어 메커니즘'을 결정할 차례였다. 이 부분이 게임을 개발하는데 있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나머지 곁다리 메커니즘들은 테스트 하면서 조금씩 수정 보완해 가면 될 것이었다. 이 게임은 추리 게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추리 부분이 메인 메커니즘이 되어야 했다. 또한 굳이 핸드폰을 게임에 사용한다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코어 메커니즘이 핸드폰을 사용해야 그 타당성이 더욱 합리적으로 느껴질 것이었다.

* 사람들은 추리 게임을 좋아한다. 기존에 개발한 '아브라카왓'이라는 게임도 겉보기에 추리게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본질은 논리적인 추리랑은 아무 상관없는 그냥 찍기 게임이다. 확률만 따져서 패를 고르면 되는데 이 부분이 마치 내가 추리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번엔 찍기 게임이 아닌 진짜 추리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다만 너무 복잡하지 않은 추리였으면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가 바로 이 게임의 룬 메커니즘이다. 이 룬 메커니즘은 사실 마스터마인드라는 고전 추리게임을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선택한 룬들의 포지션을 핸드폰 카메라로 인식하게 하고 그 결과 값에 단서를 입혀서 핸드폰 화면에 보여주면 될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플리케이션 코딩을 전혀 할 줄 모른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식한 데이터를 프로그래밍을 통해 처리하는 데 특허 기술을 가진 한국의 상명대학교 이의철 교수 연구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팀이 룬타일을 색으로 인식하여 그 종류와 위치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코딩 개발을 맡아 주었다.

이렇게 추리 메커니즘은 결정했는데, 협력 메커니즘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기존의 협력 게임들은 어떤지 생각해 봤다.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돌아갔다. "플레이어들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선택하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의해서 자신의 턴에 해야 할 일을 결정하여 자기 캐릭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게임의 지는 조건을 극복하고 승리 조건을 달성한다" ‘팬데믹’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협력 게임이기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분명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자신의 캐릭터만 조종하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플레이어들의 역할을 좀 더 확장해 보는 것이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조정할 수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온 메커니즘이 캐릭터 별로 카드를 따로 만들고 핸드에 들어온 캐릭터 카드를 사용하여 자신의 턴을 진행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두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게임을 만들어 갔다. 언제나처럼 개발은 테스트, 수정, 테스트, 수정의 연속이었다. 개발 과정 중에 많은 게 변경되었지만 게임의 근간이 되는 추리와 협력 어드벤처라는 메커니즘은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핵심 메커니즘이 두 개이다 보니 리스크가 있었다. 무엇이 이 게임의 핵심이냐라는 부분의 균형을 맞추기가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추리도 강력한 느낌을 줬고, 협력도 게임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보통 핵심이 한가지로 명확하게 집중된 게임이 좋은 게임으로 인식된다. 핵심이 두 가지로 나뉘는 게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 2015년 10월 에센에서 라이징5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브루노카탈라(미스터잭, 오부족, 어비스 등 개발)와 세드릭(루이스앤클락, 디스커버리즈 등 개발), 2015년 SDJ 수상작 '콜트익스프레스'를 출판한 루도너트의 세드릭과 세실 부부와 함께 테스트를 했었다. 그때 받았던 피드백이 추리파트가 너무 복잡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두 가지 메커니즘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때의 피드백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통해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추리 파트는 일부러 한 번 꼬아 놓은 것이었기에 다시 심플하게 변경할 수 있었다. 역시 두 메커니즘 간 수위 조절이 더 큰 골치거리였다. 그냥 추리 메커니즘만 남겨서 아주 심플한 게임으로 만들까라는 생각도 꽤 진지하게 했었다. 그런데 그럴 경우의 문제는 게임이 너무 개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변형된 마스터마인드 게임 정도의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결국 협력 부분을 유지하고 최대한 수위 조절을 맞춰보자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협력 어드벤처 메커니즘의 경우는 왜 이 메커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납득이 되어야만 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스토리였다. 스토리의 힘은 워낙 강력해서 게임에 이 메커니즘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당위성까지도 부여해 준다. 왜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게임을 해야 해? 라는 질문에 대해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스토리다. 이 게임은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 되어야만 했다.

스토리에 힘이 실리려면 무엇보다 캐릭터가 이야기의 기반이 되어야 하고, 이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즉 시리즈 게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저 시리즈 게임이라고만 하면 기존과 다를 바가 없었다. 뭔가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했다. 차별화를 위해 두 가지 부분을 추가로 결정했다. 첫째는 시리즈 컨셉의 차별화였고 둘째는 아트웍의 차별화였다.

먼저 시리즈 컨셉의 차별화를 주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 기존의 시리즈 게임들은 대부분 스토리는 이어지지만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은 변경되지 않았다. 기본 세트에 확장으로 서브 메커니즘이 약간씩 추가되어 붙는 정도거나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스탠드얼론 확장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뭔가 새로운 컨셉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정한 부분이 ‘시리즈의 다음 편은 스토리는 이어지지만 코어 메커니즘은 완전히 달라지는 게임’으로 시리즈 컨셉을 잡았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은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의 2탄을 만들고 싶다. 이것이 라이징5 1탄이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다!

다음으로 차별화해야 할 점은 아트웍 부분이었다. 사실 게이머들이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스토리는 나중에 게임을 하고 관심을 갖게 된 후에야 서서히 알게 된다. 플레이어들이 이 게임의 테마를 접하는 첫 단추는 바로 게임 패키지다. the DOME과 the GATE의 패키지도 마음에 들지만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과 섞여 있으면 평범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 게임의 아트웍은 기존과 확연하게 다르면서 스토리가 강력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실 기획 단계에서 염두에 두고 있던 아트웍 작가가 있었다. 프랑스의 방상 듀트레라는 유명한 작가다. 전부터 그의 그림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던전앤드래곤과 패스파인더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롤플레잉 게임의 아트웍에 참가 했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보드게임 아트웍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보드게임을 통해 본 그의 그림들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 많았고 동양적인 화풍과 판타지가 간혹 보이는 정도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SF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여기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방상 듀트레의 SF그림을 게임의 패키지로 한다면? 반드시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한국에 살고 있는 방상에게 'the CODE' 프로젝트에 대한 이메일을 보냈고 기쁘게도 관심을 보여줬다. 게임의 테마를 확정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다 방상의 작업 덕분이다. 상상 속에서 어렴풋하게만 있던 스페이스 오페라의 느낌이 방상의 화창하고 미려한 그림을 통해 멋지게 현실화 될 수 있었다!

* Thank you Vincent !

  그런데 이쯤 되니 내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기존에는 주로 개발자로서 기획만하고 나머지 부분은 퍼블리셔에게 완전히 떠 맞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기획에다 게임의 스토리까지 전부 기획해야 했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그래서 몇몇 믿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먼저 반드시 해야만 하지만 내가 잘하는 분야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프로듀싱과 마케팅이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했다. 특히 수출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부탁한 분이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김기찬(케빈) 본부장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라고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분이었다. 처음 부탁할 당시엔 국내 최대 보드게임 유통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개발본부장직을 막 그만두고, 만두게임즈라고 본인의 회사를 세우는 중이었다. 김본부장님은 만두게임즈에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제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나는 대형유통사의 본부장을 만난게 아니라 케빈이라는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당연히 케빈을 선택했다. 케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라이징5가 지금처럼 이렇게 세계를 대상으로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게임 개발에 있어서도 도움이 필요했다. 작업실에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 송대은(이하 에반)이라는 친구가 있다. 옆에서 1년간 함께 the GATE의 작업을 하다 보니 이 친구의 실력과 성실성 뿐만 아니라 그 열정에 무엇보다 믿음이 갔다. 내가 먼저 라이징5 프로젝트에 도움을 달라고 그에게 요청했고 다행히 받아들여줬다. 사실 게임 패키지에 작가로서 나 혼자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나중에 게임이 나왔을 때 더 뿌듯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도움을 요청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에반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어플리케이션을 기획하는 쪽이나 게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고, 테스트하고 수정하고 밸런싱 하는 부분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라이징5를 시리즈로 만들자고 처음 생각했던 당시에는 '매 시리즈마다 다른 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면 재밌겠다'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생각은 완전히 버렸다. 에반이 도와주지 않으면 다음 시리즈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 다음 시리즈도 물론 에반과 함께 만들 생각이다.

  팀이 구성되었으니 이제 출시를 위해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게임의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었다. the CODE라는 제목에서는 캐릭터의 스토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Seekers, the Gatherers, Rune Code 등 몇 가지 후보가 있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캐릭터 5명을 지칭하는 그룹 이름으로 적당한 것을 생각하다가 ‘라이징5’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다. 별들이 떠오르는 우주의 느낌에 어울리기도 하고, 캐릭터들의 성장 스토리가 암시적으로 드러나는 제목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고마운 친구들이 또 있다. 홀리그레일게임즈의 제이미와 올리비에다. Tric Trac에 라이징5 소개 리뷰를 해준 것도 고마웠는데, 함께 킥스타터를 해보자는 제안까지 주었다. 한국의 크라우드펀딩을 해 본 경험은 있지만 킥스타터를 하기엔 지역적인 어려움이 있던 것이 현실이었다. 킥스타터는 언젠가는 한 번 도전해보고 싶던 경험이었는데 그 경험을 앞당겨 주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맙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라이징5의 전체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홍보영상 촬영차 한국에 왔을 때 함께 했던 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자, 이제 모든 게 준비되었다. 이 즐거웠던 여정을 여러분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모두 함께 라이징 !!"

​**** 이 글은 개발자 김건희가 2016년 10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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